[미디어펜=이상일 기자] 8차례 방북이 김기종(55)을 변하게 만들었다?
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한 김기종의 극단적 행동은 방북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종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로서 1997년부터 10여년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사를 지냈다.
![]() |
||
| ▲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한 김기종./YTN 캡처 | ||
김기종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민족화합운동연합’이라는 단체 소속으로 8차례나 방북했다. 방북이후부터 김 씨의 행동이 극단으로 흘렀다. 김기종은 1988년 우리마당 회원들이 괴한에 피습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 달라며 2007년 10월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때는 광우병 촛불시위와 용산참사 관련 정부 규탄 시위에 앞장섰다. 이후 반미·친북 색채가 더욱 짙어지면서 2010년 천안함 폭침을 놓고 “남붑 공동조사를 하자”고 주장한데 이어 종북 인사 황선씨가 현재 이사로 있는 주권방송 창립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듬해 2월부터는 우리마당 통일연구소를 통해 매달 토론회를 열어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고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며 북한 주장을 답습하며 반미론을 주장했다.
김기종은 2010년 7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강연회 중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 대사에게 독도문제를 항의하며 콘크리트 조각 2개를 던졌다. 법원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고 북한은 당시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그를 지지하기도 했다. 김정일 사망 당시에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려다 보수단체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김씨는 2007년 분신 사건 이후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