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사각지대 비정규직…밥그릇 놓지 않으려는 노조기득권 정규직
정의로운 정규직 노조원

모 방송국에서 일할 때다. 프로젝트 건수마다 계약을 통해 일하는 비정규직 프로듀서의 삶은 고되고 고된 것이었다.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나마도 집에 들어가서 자고 씻고 나올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이런 식으로 벌이를 하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고용보장이니, 복지처우 개선이니 하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정규직으로 입사해 회사에서 허리 꼿꼿이 세우고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계약직 실무자들은 소리 없는 소모품들일 뿐이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정규직의 진두지휘에 맞춰 기획을 짜낸다. 그렇게 큰 그림을 같이 그리고나면, 그 다음부터 세부적인 사항을 채워나가는 것은 계약직들의 일이었다. 말하자면 실무를 우리가 담당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의 주가 계약직들이었고, 정규직들은 사실상 옆에서 승인을 해주는 ‘보조’ 역할만 할 뿐이었다.

재미있는 건 전형적인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이들 정규직들의 태도였다. 노조에 속해있는 이들 정규직은 항상 스스로를 ‘노동자’로 포지셔닝하며 회사와,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러한 불만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종종 포장되곤 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보다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에는 관심이 없어보였다. 냉정하게 말해 밥그릇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 정규직 노조 기득권들이 노동자의 이름으로 약자인 척 하고 있는 동안, 진짜 약자들은 그림자가 되어버렸다./사진=연합뉴스


소모품인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줄 경우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잃게 된다. 결국 나눠주지는 못하겠다는 거다. 그들이 ‘노조’의 이름으로 제기하는 문제의식에는 분명 타당한 것들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배부른 소리’들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이 회사 광장에서 투쟁을 외칠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음 계약에는 잘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편집실에서 철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불만이 쌓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부당한 현실에 대한 인식 정도는 있었다. 그러나 나와 동료들이 모여 무언가 목소리를 내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단순히 일이 너무 많기도 했고, 힘이 부족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노동조합은 어디까지나 정규직 노동자들만을 위한 집단인 것 같았고, 노조에 들지도 못하는 우리들은 불가촉천민 마냥 서로에게 설움을 호소하며 일상을 이어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기득권들이 노동자의 이름으로 ‘약자’인 척 하고 있는 동안, 진짜 ‘약자’들은 그림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마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손을 거쳐 만든 자식같은 작품을 넘겨주고서 평을 기다렸다. 모니터링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다음 계약도 쉽게 따낼 수 있으리라. 계약이 만료되고, 집에서 회사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사내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음은 물론, 미국에 있는 시상식 심사 대상으로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이후에 결정된 사실이지만, 시상도 받았다)

당연히 팀원들은 큰 기대에 부풀었다. 솔직히 재계약은 물론, 성과급도 받을 것이라 김치국을 마셔대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사정을 알고보니 정규직들이 공로를 가로챘고, 실제로 다큐를 만들었던 팀원들의 공로는 알려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 날 팀원 형들과 술 한 잔 하며 한 대화가 생각난다.

"형 저, 이 일 때려치우고 얼른 졸업해서 정규직 하려고요."

"그래 넌 젊으니까 아직 기회가 있잖아. 너라도 사람답게 살아야지." /우원재 자유기고가

   
▲ 노조에 속해있는 이들 정규직은 항상 스스로를 노동자로 포지셔닝하며 회사-사회-국가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았다./사진=미디어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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