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금과 민간회계간 구분이 급선무…시도별 '감사 여건' 달라 전수조사 가이드라인도 미비
   
▲ 사립유치원의 교사와 교지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과 토지는 헌법상 설립자 개인의 사유재산에 속한다./연합뉴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사립유치원에 대한 교육청의 감사결과를 최초로 폭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처벌 강화 및 재개원 방지를 골자로 '비리근절 3법' 발의안 내용을 공개했지만, 제도상의 근본원인과 해법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립유치원 비리'라며 이를 비판하는 국민감정과 법적으로 따져본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립유치원의 비용 지출에 대해 감사 지적을 받아도 결과적으로 무혐의·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법정까지 가더라도 유치원측이 승소 판결을 받는 경우가 많아, '정부 지원금과 민간회계간 구분'이 급선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기도의 한 사립유치원 설립자는 교비회계에서 15억원을 인출해 자신이 소유한 다른 어학원 비용으로 쓰고 자가용 보험료 1000여만원을 냈지만, 검찰은 그에게 제기된 횡령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2016년 사립유치원 90여곳을 감사해 그중 20여곳을 횡령 및 사립학교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지만, 아직 수사중인 일부를 제외하고 상당수 사립유치원은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사립유치원의 재무회계 특수성을 잘 모르는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례이지만, 이는 민간 재산권을 둘러싼 다른 시각에서 비롯된 결과다.

사립유치원의 교사와 교지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과 토지는 헌법상 설립자 개인의 사유재산에 속한다.

법조계는 사립유치원이 지난 수십년간 사적재원으로 운영되어 왔고 2012년 누리과정이 도입되면서 정부 지원금이 혼재되어 사립학교법상 교비회계와 동일하게 볼 수 없기 때문에 교비의 사적 사용에 대한 처벌이 힘들다는 입장이다.

또한 정부 지원금일지라도 이는 보조금과 달리 용처가 명시되지 않아 교비의 사적 사용에 대한 법적 잣대를 들이대기가 어렵다. 사립학교법 조항에 따르면, 차입금의 원리금을 상환하는 경우는 다른 회계에 전출하거나 대여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기도 하다.

대법원 또한 지난 2012년 피고인이 사립유치원 설립자 겸 경영자와 공모해 수업료를 교비회계가 아닌 다른 회계에 임의로 사용한 혐의(횡령)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무죄'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사립유치원 횡령 사건에 대해 "해당 유치원은 사인(개인)이 설립해 운영하는 학교로, 수업료 등으로 조성된 교비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유치원의 설치-경영자 소유에 속한다"며 "돈을 임의로 사용하더라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 경기도의 한 사립유치원 설립자는 교비회계에서 15억원을 인출해 자신이 소유한 다른 어학원 비용으로 쓰고 자가용 보험료 1000여만원을 냈지만, 검찰은 그에게 제기된 횡령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교육부 유치원알리미 홈페이지


지난 수년간 사립유치원 문제에 몰두해온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전 특임교수는 이와 관련해 "비리의 판단기준이 잘못되어 생겨난 감사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며 "교육청이 적발한 소위 사립유치원의 비리는 대부분 시정조치로 끝난다"고 언급했다.

김정호 교수는 "검찰과 법원에서 무혐의나 무죄로 본 이유는 교비계좌의 돈이 사립유치원 원장의 소유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자기 돈을 자기가 쓰는 것이기에 횡령죄가 성립될 수 없고, 교육당국은 사립유치원장이 자기 돈을 자기가 썼다며 고발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 교수는 "급식비처럼 학부모에게 구체적 용도를 알리고 받은 돈일 경우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은 사기죄로 유죄 판결이 나지만, 용도를 말하지 않은 일반적인 자금은 사적으로 쓴다고 해서 횡령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용진 의원이 자신의 법개정안에서 놓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과 별개로, 앞으로 정부 교육당국의 내실있는 감사가 가능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각 시도별 감사 여건이 다른 것을 비롯해 사립유치원 전수조사를 위한 감사인력 확보도 시도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시도별 편차를 줄이기 위해 사립유치원 조사수위 및 조사주기, 처분수위에 관한 중앙정부 차원의 통합 가이드라인부터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번 감사 결과를 '사립유치원 비리'라고 규정짓고 "무관용 원칙으로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혔지만, 학부모들이 만족할 정도로 실효적인 성과를 내놓을지 미지수다.

상시 감사체계를 구축하고 전문성 있는 감사 인력을 통해 사립유치원을 살펴본다 하더라도, '개인 재산권 보호'라는 근본적인 명제를 풀지 못하는 한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