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 사태 장기화로 유럽 경제가 화석연료발(發)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단순 제조에서 '종합 에너지 솔루션'으로 이동하고 있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국가와 기업들이 '화석연료 인플레이션(fossilflation)'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국내 태양광 업계는 모듈 공급을 넘어 발전소 건설과 운영을 아우르는 밸류체인 내재화를 무기로 글로벌 전력망 시장의 생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동 사태 장기화로 유럽 경제가 화석연료발(發)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단순 제조에서 '종합 에너지 솔루션'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한화솔루션이 완공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 50MW 규모 태양광 발전소./사진=한화솔루션 제공
17일 국제금융센터 및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중동발 에너지 충격 여파로 올해 유로존의 경제 성장 전망치는 기존 1.3%에서 0.8%로 하향 조정된 반면 물가 전망치는 1.8%에서 2.9%로 상향됐다. 특히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화석연료 가격 급등이 물가 상승을 견인하는 '화석연료 인플레이션' 현상이 재발하면서 유럽 정책 당국의 고심이 깊어졌다.
이런 거시적 위기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 구조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산업군을 중심으로 공급망 붕괴 공포가 확산되면서 화석연료 가격 변동에 휘둘리지 않는 안정적인 전력원 확보는 이제 단순한 친환경 정책을 넘어 국가와 기업의 거시적 생존 문제로 직결되고 있다.
◆패널만 팔던 시대는 끝…발전소 짓고 운영까지
시장 구조 변화에 대응해 국내 태양광 업계는 부품 생산부터 서비스까지 모두 책임지는 수직계열화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중국 기업들의 저가 물량 공세에 밀려 모듈 판매 시장에서 고전해 왔다. 이에 K-태양광 기업들은 단순 부품 제조를 넘어 발전소 개발, 건설, 그리고 완공 후 운영 및 관리 영역으로 사업 축을 과감히 옮기며 독자적인 시장 통제력 확보에 나섰다.
한화솔루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구축 중인 솔라 허브를 필두로 기초 소재부터 모듈로 이어지는 생산 내재화는 물론 대규모 발전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완공 후 운영까지 책임지는 '토털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는 데 집중했다. 부품 공급에 그치지 않고 최종 전력 생산 생태계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글로벌 공급망 교란 속에서도 자체적인 마진을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OCI홀딩스 역시 튼튼한 기초 소재 경쟁력을 바탕으로 동남아 등 해외 발전 사업권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며 이익 방어망을 구축했다.
◆발주처 역학 관계 변화…가격보다 신뢰와 안정성
에너지 생태계 내 고객들의 눈높이 변화도 국내 기업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막대한 전기를 사용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에너지 안보가 시급한 유럽 정부 등 대형 발주처들은 이제 '가장 싼 제품'이 아닌 '가장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
널뛰는 화석연료 가격에 크게 데인 고객들 입장에서는 20년 이상의 장기 전력구매계약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최우선이다. 태양광 발전의 처음과 끝을 모두 장악해 리스크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기업만이 이들에게 확정적인 가격표를 제시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이 막대한 보조금을 바탕으로 물량 공세를 펴고 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 탓에 '안전한 에너지 공급망'을 원하는 서구권 고객들의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수직계열화를 이룬 국내 기업들로 좁혀지는 양상이다.
◆중국발 공급 과잉 정면 돌파…생산부터 운영까지 책임
결국 K-태양광의 생존 공식은 '통합 서비스'의 경쟁력으로 요약된다. 부품만 떼어 파는 구조에서는 중국의 압도적인 물량을 이기기 어렵지만 부품 공급부터 발전소 운영까지 통째로 책임지는 구조에서는 기술적 신뢰도와 꼼꼼한 관리 능력이 싼 가격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배터리 기업들과 협력해 태양광 발전의 약점을 보완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술까지 연계할 경우 화석연료를 완벽히 대체하는 독립적 전력망 구축이 가능해진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유럽을 강타한 화석연료 인플레이션은 기름값에 기대는 경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한번 증명했다"며 "에너지 생산부터 저장, 운영까지 이어지는 자신만의 공급망을 완성해 외부 위기를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기업들이 향후 글로벌 전력 시장의 진짜 주도권을 거머쥐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