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으며 한국 영화사의 새 지평을 연 박찬욱 감독이 개막을 앞두고 자신의 엄격한 심사 철학을 공개했다.
현지 시각으로 11일, AFP 통신은 프랑스 칸에서 박찬욱 감독과 진행한 단독 인터뷰를 보도했다. 박 감독은 이번 인터뷰에서 특정 장르나 정치적 메시지에 함몰되지 않고, 오직 ‘시간의 시험’을 견뎌낼 수 있는 예술적 성취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상이라는 것은 50년이나 100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며 남을 작품들에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본인만의 심사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작품을 평가할 때 국적, 장르, 정치적 이념과 같은 ‘외부 요인’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작품 자체가 지닌 내재적 가치만을 보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이 칸 현지에서 AFP 통신과 인터뷰를 하며 심사 철학과 소회 등을 밝혔다.(자료사진)/사진=연합뉴스
특히 최근 세계 영화계의 흐름인 정치적 올바름(PC)이나 사회적 메시지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박 감독은 “영화가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어서는 안 되지만, 반대로 그 이유만으로 우대받아서도 안 된다”며, 제작자가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을 풀어내는 ‘예술적 완성도’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박 감독의 심사위원장 위촉은 그와 칸 영화제가 맺어온 22년 인연의 결실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04년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전 세계에 ‘박찬욱’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그는, 이후 ‘박쥐’(2009)의 심사위원상, ‘헤어질 결심’(2022)의 감독상 등을 거치며 칸이 가장 신뢰하는 거장으로 우뚝 섰다.
한국인 최초로 심사위원장을 맡게 된 소감에 대해 박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처음으로 한국인이 심사위원장이 됐구나’라는 감회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한국 영화가 변방 취급을 받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대에도 한국에는 훌륭한 감독과 배우들이 많았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의 변화는 그런 시대에 맞는 움직임”이라며 공을 선배 영화인들에게 돌렸다.
박 감독은 자신의 국적이 심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는 “가능한 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심사할 계획”이라며, 심사위원장이라는 자리가 영화사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차대한 위치임을 역설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에 어떤 영화가 중요한지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려 한다”며, “이상적으로는 훗날 역사가 오늘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찬욱 감독이 이끄는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은 약 열흘간 경쟁 부문에 초청된 20여 편의 작품을 심사하며, 오는 5월 24일 폐막식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을 발표할 예정이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