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국내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가 올해 4월 기준 100만 대를 돌파한 가운데 정부가 국가 보조금이 투입되는 전기차 보급사업 수행자에 대한 평가기준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전기차 - 충전기 커넥터 연결 이미지./자료사진=현대차
최근 중동 전쟁 여파에 따른 국제 유가 불안과 친환경차 수요 확대 속에 올해 신차 판매량의 약 20%가 전기차일 정도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자, 단순 보급 확대를 넘어 품질과 안전, 사후관리 체계까지 종합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전기차 보급사업 수행자 선정 평가기준’을 확정하고 올해 하반기부터 기준을 통과한 제작·수입사만 국가 전기차 보급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이번 기준은 지난 3월 공개된 초안 이후 국회와 자동차 업계,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수정·보완됐다. 특히 기존 초안에서 제기됐던 “평가자의 주관 개입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반영해 정성평가 항목을 대폭 축소하고 정량평가 중심으로 재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또 일부 업체에 유리하다는 논란이 있었던 기준도 조정했다. 정부는 국내 기업뿐 아니라 기술력과 사업역량을 갖춘 해외 업체, 신규 유망업체도 참여할 수 있도록 형평성을 고려해 제도를 설계했다는 설명이다.
당초 80점이었던 통과 기준 역시 제도 도입 초기 부담을 감안해 60점으로 완화됐다. 확정된 평가기준은 총 100점 만점으로 △기술개발 역량(10점) △공급망 기여도(40점) △환경정책 대응(15점) △사후관리 지속성(20점) △안전관리(15점) 등 5개 분야, 13개 세부 항목으로 구성된다.
우선 기술개발 역량 분야에서는 국내 연구개발(R&D) 투자 규모와 연구시설, 전문 인력 확보 수준 등을 평가한다. 예를 들어 승용 전기차 판매 업체의 경우 연구개발 투자액이 500억 원 이상이면 만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연구소와 시험설비, 전문 연구 인력 확보 여부도 주요 평가 대상이다. 정부는 단순 수입·판매를 넘어 국내 환경과 법규에 적합한 품질관리 능력을 확보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겠다는 방침이다. 해외 본사의 기술 경쟁력이 높은 경우에는 국내 법인뿐 아니라 해외 본사의 연구개발 실적도 인정된다.
배점이 가장 높은 공급망 기여도 분야는 총 40점으로 구성됐다. 국내 양산라인을 운영하는 업체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며, 단순 조립 수준에 그치는 경우에는 일부 점수만 부여된다. 국내 생산시설이 없는 업체는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게 된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 과정에서 내연기관차 대비 부품 수가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는 만큼, 부품업계 전환 지원 여부도 주요 평가 요소에 포함됐다. 공동 연구개발, 기술 지원, 공동 프로젝트 추진 실적 등을 평가해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국내 부품 산업과 얼마나 상생하는지를 살핀다.
지역 공급망 안정성도 평가 대상이다. 국산 부품 사용 비율이 높을수록 가점을 부여하며, 국산화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만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고용 창출 효과도 반영해 국내 생산과 판매·서비스 과정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고용을 창출한 업체에 높은 배점을 부여한다.
환경정책 대응 분야에서는 전기차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평가한다. 차량 생산 국가의 탄소배출량 수준과 판매 물량 등을 반영해 점수를 산정하며, 재생 소재 사용과 폐배터리 재활용 체계 구축 여부도 함께 평가된다. 기후부는 전기차 확대가 단순 보급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자원순환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비자 보호와 직결되는 사후관리 지속성 분야도 강화됐다. 승용차 기준으로 직영 정비소 15개 이상, 협력 정비망 30개 이상을 확보한 경우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사후 책임 보험 가입 여부와 사후관리 전담 조직 운영 여부, 10년 이상 부품 공급 계약 확보 여부 등도 평가 항목에 포함됐다.
정부는 최근 일부 수입차 브랜드의 국내 철수 사례로 소비자 불안이 커진 점을 고려해 판매 이후에도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구조적 역량을 중점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안전관리 분야에서는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전기차 화재 대응 역량을 평가한다. 화재 대응 매뉴얼과 리콜 체계 구축 여부를 비롯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사이버 보안 체계 구축 여부도 평가 대상이다. 정부는 전기차가 ‘움직이는 스마트폰’으로 불릴 만큼 디지털화된 만큼 해킹과 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한 대응 능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보급사업 추진 절차를 위반하거나 정부의 시정조치 요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최대 20점의 감점도 적용된다. 정부는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전기차 보조금이 사업 수행 능력이 부족한 업체에 지원되지 않도록 지속 관리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이번 제도가 처음 도입되는 만큼 향후 시행 과정에서 업계와 소비자 의견을 지속 수렴해 평가기준을 보완·개선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시장 변화 속도가 빠른 전기차 산업 특성을 고려해 기술 수준과 공급망 변화, 안전 이슈 등을 반영하며 제도를 단계적으로 안착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평가는 규제가 아닌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보급사업의 책임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 기준”이라며 “평가 항목이 형평성을 갖추도록 했고, 정성평가 항목을 최소화하고 간소화, 정량화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일부 가점을 두고 국내·외 전기차 사업자의 평가 형평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해외업체를 배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라며 “(평가를 통해)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도 떨어질 수가 있고 경쟁력 있는 해외업체도 국내 보급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