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한 SK하이닉스의 해외 영토 확장이 본격화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7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퍼듀대학교에서 총 38억7000만 달러(약 5조3600억 원)를 투입하는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 기공식을 개최했다.
엔비디아, TSMC로 이어지는 삼각 동맹을 강화하고 차세대 HBM 공급망을 미국 현지에서 완성하겠다는 전략적 행보다. 그러나 이 같은 글로벌 도약과 달리, 국내에서는 2026년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잠정합의안이 부결된 이후 직군 간 이견과 노노 갈등이 불붙으며 내부 진통이 장기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가 곽노정 SK하이닉스 CEO(가운데)가 27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퍼듀대학교에서 열린 AI 메모리 생산 기지 기공식에서 마이크 브런(Mike Braun) 인디애나 주지사(왼쪽), 미치 대니얼스(Mitch Daniels) 퍼듀대학교 총장(오른쪽) 등 참석자들과 함께 착공을 알리는 버튼을 누른 뒤 축하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제공
◆ 2021년 PS 불만 폭발에서 영업이익 10% 체제까지… 성과급의 역사
SK하이닉스의 성과급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입사 4년 차 직원이 성과급 산정 기준의 불투명성과 삼성전자 DS부문(연봉의 47%) 대비 낮은 보상 수준(연봉의 20%)을 지적하며 최고경영진에 공개 항의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이는 단순한 액수 문제를 넘어 산정 기준의 투명성 논란으로 번졌고, 삼성전자 노사협의회 등 재계 전반으로 성과급 산정 공식 공개 요구가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사태 해결을 위해 사측은 복잡한 경제적 부가가치(EVA) 기준을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0%를 PS 재원으로 활용하는 투명한 공식에 합의했다. 지난해 노사는 이 틀을 10년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올해 영업이익이 약 250조 원으로 추산되면서 1인당 평균 7억 원대 성과급이 예상되자, 주가 하락 변동성에 대응한 ‘현금 40% + 자사주 60%’ 지급 방안을 둘러싸고 또다시 균열이 생겼다. 단기 실익과 지급 방식을 둘러싼 시각 차이로 성과급 논란이 되풀이된 셈이다.
◆ 기술사무직 “글로벌 테크 방식 수용” vs 생산직 “변동성 큰 주식 대신 현금”
이번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는 SK하이닉스 내부의 직군별 시각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R&D와 엔지니어링을 담당하는 기술사무직 노조는 찬성률 66.2%로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석·박사급 및 대졸 유치 인력이 주축인 기술사무직(약 2만 명)은 미국 빅테크의 주식 연동 보상(RSU) 체계에 친숙하며, 회사의 중장기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 증식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회사가 2026년도 성과급에 한해 최대 80%까지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둔 점도 수용 배경이 됐다.
반면 생산직(전임직) 노조 투표는 반대 50.08%(7,535표), 찬성 49.92%(7,510표)로 단 25표 차 부결됐다.
주가 하락 시 손실 우려와 주식 지급 구조의 복잡성에 대한 반감이 작용하면서, 기존 약속대로 '안전한 현금 100%'를 달라는 목소리가 근소하게 앞섰다. 전체 조합원의 과반 찬성을 얻지 못함에 따라 노사는 재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 사무직 노조 탈퇴와 통합노조 가입… 거세지는 후폭풍
투표 결과 발표 이후 사내 후폭풍은 커지고 있다. 잠정합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기술사무직 노조를 향해 생산직 및 일부 사무직 직원들의 비판이 쏠렸고, 이에 불만을 품은 사무직 조합원들의 노조 탈퇴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사무직 노조위원장이 직접 공지를 통해 차분한 대응을 당부할 정도로 내부 분위기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이탈표는 최근 출범한 신설 통합노조로 유입되는 흐름을 보인다. 통합노조는 PS 현금 100% 지급과 영업이익 10% 정상화 등을 요구하며 기존 합의안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하루 사이 조합원 수가 100여 명 늘어나는 등 세를 확장하고 있다.
다만 현 교섭권은 기존 노조들에 있어 향후 노사 간 협상 구조와 노노 관계는 한층 복잡해질 전망이다.
◆ 인디애나 팹 착공하며 미래 도모하는데… 내부 갈등은 리스크
SK하이닉스가 5조4000억 원을 투입하는 인디애나주 팹은 단순한 해외 생산기지를 넘어선다. 국내(이천·청주)에서 생산한 웨이퍼를 현지로 가져와 첨단 패키징을 거친 뒤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에 즉시 납품하는 '완결형 AI 메모리 공급망'의 핵심 거점이다.
여기에 퍼듀대와의 산학 협력으로 차세대 3D 패키징 기술까지 확보해 글로벌 반도체 영토를 확장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다.
이처럼 회사가 대미 통상 리스크를 줄이고 글로벌 거점을 확보하며 미래 성장에 사활을 건 시점에, 국내 성과급 갈등의 장기화는 기업 리더십과 경영 행보에 적지 않은 부담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기술사무직의 가결로 보상 개편의 공감대는 확인했으나 생산직 노조와의 재협상이 표류할 경우 현장 사기 저하와 생산성 차질은 물론, 수억 원대 현금 대량 유출에 따른 재무적 유동성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첨단 격전지에서 차세대 HBM 주도권을 지켜내야 하는 회사의 과제와 단기 현금 보상을 둘러싼 내부 내홍 사이에서, 노사가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지가 향후 경영의 핵심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