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을 빠르게 대신하면서 일자리와 일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청년층부터 고용 충격이 가시화되면서 사람이 일을 통해 경험을 쌓고 숙련자로 성장해온 '경력 사다리'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AI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이 일하며 축적한 경험과 판단은 더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다. 미디어펜은 이번 기획을 통해 AI가 사람의 역할을 제한하는 미래가 아닌 인간의 능력을 넓히는 기술로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AI가 자료 검색과 문서 작성부터 데이터 분석, 고객 상담까지 사람이 해온 업무를 빠르게 나눠 맡고 있다. 최근에는 AI 에이전트가 여러 시스템을 오가며 직접 업무를 처리하면서 기업이 AI에 맡길 수 있는 일의 범위도 넓어지는 추세다. 이에 산업계에서는 AI를 인력 대체 차원이 아닌 반복 업무를 덜어내고 구성원이 판단과 창의성,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하도록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는 분위기다. 이와 함께 AI가 높인 생산성을 사람의 역량과 업무환경 개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인간과 기술이 함께 성장하는 방법으로 거론된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3사, 삼성SDS와 LG CNS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제조와 연구개발(R&D), 고객 상담, 문서 작성 등 다양한 업무에 AI를 적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는 수준에서 나아가 AI 에이전트가 여러 시스템을 오가며 직접 업무를 처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해진 절차를 빠르게 처리할수록 사람은 그 결과를 실제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고객과 동료의 의도를 파악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과 서비스로 만드는 일도 사람의 경험과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기업의 AI 활용도 이런 역할 분담을 중심으로 넓어져야 한단 목소리가 나온다. 기존 업무 일부를 자동화하는 데서 끝내기보다 AI가 자료를 찾고 반복 작업을 처리하면 구성원이 의사결정과 고객 대응, 제품·서비스 개선에 더 많은 시간을 쓰도록 업무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 AI가 못 채우는 자리… 신입도 조직을 바꾼다
AI 시대에도 신입사원 채용은 계속 필요하다. 미래 숙련인력을 확보하는 것 외에도 조직 안에서 이들이 맡는 역할은 적지 않다. 기업의 의사결정에는 축적된 경험과 데이터뿐 아니라 새로운 판단과 시도가 요구된다. 새로운 고객과 시장이 등장할 때 기존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기술과 소비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젊은 구성원의 시각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직은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면서 움직인다. 숙련자는 오랜 기간 쌓은 업무 지식과 판단 기준을 전달하고 신입 구성원은 새로운 질문과 시각을 보탠다. 동료를 설득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고객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는 과정 역시 데이터만으로 대신하기 어려운 사람의 역할이다.
창의성이 필요한 업무에서도 AI와 사람의 강점은 다르다. 생성형 AI는 방대한 자료를 빠르게 분석하고 여러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 무엇이 실제 고객에게 필요한지 판단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일은 사람이 맡는다. AI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시간을 줄여주면 사람은 방향을 정하고 이전에 없던 결과물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신입사원의 업무도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는 자료 조사와 정리 같은 단순 업무부터 오랜 시간 경험했다면 AI를 활용해 기본 작업에 드는 시간을 줄이고 보다 일찍 실제 문제 해결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AI를 신입 채용을 줄이는 수단이 아니라 구성원의 성장을 앞당기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숙련자와 신입의 역할도 함께 넓어진다. 숙련자는 반복적인 확인과 자료 정리에 쓰던 시간을 복잡한 문제 해결과 후배 교육에 활용하고, 신입은 AI의 도움을 받아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익히면서 선배의 판단 과정을 배울 수 있다. AI가 세대 간 경험 전수를 돕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사람 대신 아닌 사람과 함께… 산업현장 넓어지는 AI 활용
국내 산업계에서도 AI를 구성원의 판단과 숙련도를 높이는 데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조 현장에서는 AI가 생산설비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찾아내면 작업자가 설비 상태와 생산 상황을 함께 살펴 대응 여부를 결정한다. 사람이 방대한 데이터를 확인하는 시간을 줄이면서 현장의 판단은 구성원이 맡는 식이다.
삼성전자는 제조 현장에 AI와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스마트팩토리를 확대하고 있다. LG전자도 AI와 디지털트윈, 로봇 등을 활용해 설비와 공정 흐름을 분석하고 자체 공장에서 쌓은 제조 경험을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으로 확대하고 있다. 숙련자의 경험에 데이터 분석을 더해 경험이 적은 구성원도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통신이나 IT서비스 업계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통신3사는 네트워크 운영과 고객 상담, 마케팅, 기업 간 거래(B2B) 등에 AI를 적용해 자료 검색과 반복 작업에 드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 삼성SDS의 'FabriX'와 LG CNS의 'AgenticWorks' 등 기업용 AI 플랫폼도 사내 데이터와 업무 시스템을 연결해 자료 검색과 문서 작성, 시스템 간 업무 처리를 지원한다.
이렇게 확보한 생산성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AI 도입의 효과도 달라진다. 같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한다는 이유로 업무량을 늘리거나 인력을 줄이는 데 집중할 수도 있지만, 구성원이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하고 고객과 소통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는 데 시간을 쓸 수도 있다.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데 활용할 여지도 있다. 위험한 현장 작업이나 야간 모니터링을 AI와 자동화 기술이 맡고 불필요한 보고와 자료 정리에 쓰는 시간을 줄이면 구성원의 업무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생산성 향상이 기업의 비용 절감과 함께 구성원의 안전과 시간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AI가 기본적인 자료 조사와 분석을 대신할수록 기업의 직원 교육 방향성도 판단과 협업,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신입에게는 실제 업무와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를 주고 숙련자는 자신의 경험을 더 복잡한 문제 해결과 후배 육성에 활용하는 식이다.
AI가 맡을 수 있는 업무가 늘어날수록 사람이 직접 해야 할 일도 보다 분명해질 수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반복 업무에 쓰던 시간을 판단과 기획, 새로운 경험을 쌓는 데 활용한다면 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구성원의 역량 강화로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단순 반복 업무는 AI에 맡기고 구성원이 고객과 소통하거나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데 집중할 수 있다면 생산성 향상과 사람의 성장을 함께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배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