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과 더불어 미국 고담어워즈 3개 부문 노미네이트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와 평단으로부터 폭발적인 찬사를 받으며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로 꼽히는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47회 청룡영화상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명단에서 최종 제외됐다.
청룡영화상 사무국이 공식 발표한 제47회 후보 명단에 따르면, '가능한 사랑'은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나홍진 감독의 '호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8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설경구(남우주연상), 전도연(여우주연상), 조인성(남우조연상), 조여정(여우조연상) 등 주·조연 배우 4인 전원이 연기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촬영조명상, 각본상, 음악상, 편집상 등 주요 제작 스태프 부문까지 싹쓸이 지명됐다.
그러나 정작 영예의 최고관이라 할 수 있는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후보 라인업에는 '가능한 사랑'과 이창동 감독의 이름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남녀 주·조연상과 촬영, 조명, 음악, 편집, 각본까지 영화를 구성하는 연기적·기술적 핵심 요소가 전 부문 최고의 평가를 받은 상황에서, 이를 총지휘한 감독과 작품 자체가 최고 영예 부문 후보에서 배제된 기이한 현상이 연출된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제47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남녀주조연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정작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않은 것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사진=넷플릭스 제공
이를 두고 영화계 안팎에서는 '세계적 거장 이창동 감독과 그의 신작이 정작 국내 최고 권위의 청룡영화상에서 저평가되거나 외면받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배우들의 독보적인 열연과 스태프들의 완성도 높은 기술력이 공식 인정받은 반면, 정작 그 열매를 하나로 엮어낸 연출자와 작품 고유의 예술성에 대한 평가가 빠진 것에 대한 평단과 관객들의 의문이 거세게 이어졌다.
하지만 실상은 청룡영화상의 평가 절하가 아닌, 이창동 감독과 제작사 파인하우스필름의 자발적인 '후보 고사'에 따른 결과로 확인됐다. 청룡영화상 사무국은 "이창동 감독과 제작사가 청룡영화상 작품상 및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않겠다는 고사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혀왔고, 영화제 측은 그 뜻을 존중해 해당 부문 심사에서 제외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사무국은 "작품을 위해 헌신한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노력 및 권리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기에 그 외 부문에서는 정상적으로 후보 선정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이창동 감독의 이러한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2년 영화 '오아시스' 시절부터 이 감독은 청룡영화상을 주관하는 특정 언론사의 주최 방식 및 성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해당 영화상의 후보 및 수상 고사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후 '밀양'(2007), '시'(2010), '버닝'(2018)에 이르기까지 이 감독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작품상과 감독상 고사 잔혹사는 반복되어 왔다.
영화 평론가들은 이에 대해 이창동 감독 특유의 소신과 영화제의 유연한 타협이 만든 독특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한 영화평론가는 "이창동 감독은 수십 년 간 신문사가 주관하는 영화상의 상업성과 정치적 성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소신 있게 유지해 왔다"면서 "감독 개인의 거부 의사와 별개로, 영화에 함께 참여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노고까지 차단하지 않고 후보 자격을 보장한 청룡영화상의 결정 또한 현명한 상생의 선택"이라고 평했다.
결국 '왜 올해 청룡은 이창동 감독을 생각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영화제의 외면이 아닌, 거장 이창동 감독이 수십 년간 지켜온 단단한 신념과 소신에 있었다.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서는 빠졌으나 설경구, 전도연을 비롯한 명품 배우진과 스태프들이 대거 지명된 '가능한 사랑'이 오는 11월 25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는 제47회 청룡영화상에서 몇 관왕의 영예를 안을지 영화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