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코스프레·언더도그마·국민정서에 함몰된 민중…민주주의가 종교가 된 나라
피터팬 같은 나라, 대한민국

1987년, 마침내 군부독재가 끝났다. 6월 항쟁과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시민들의 시위에 의해 독재자가 항복한 것이다. 꿈에 그리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영광스런 87년 체제.

그리고 2017년. 무려 30년이 지났지만,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피터팬 증후군을 앓는 어른처럼 이 87년 민주주의의 유년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성장도 없다.

한국의 정치적 이해 수준과 문화, 감성 등은 딱 7-80년대 운동권에 머물러있다. 독재를 경험해본 적도 없고, 권력의 무서움을 느껴본 적도 없는데, 386 운동권 세대가 물려준 투쟁정신에만 매몰되어 무언가 대단한 착각에 빠져있다. 자신들은 나약한 민중이라는 착각. 절대적인 힘을 가진 권력자들에게 핍박받고 있으나, 찍소리도 못 내는 그런 존재라는 진부한 착각. 이 착각과 더불어 '민주주의'는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 그렇게 민주주의 도그마가 합리적, 상식적 판단을 막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해마다 평균 50회의 불법 폭력 시위가 발생하고, 평균 283명의 경찰이 시위대의 폭력에 부상당한다. 재작년 민중총궐기 한 건에만 100여명의 경찰들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경찰들의 과잉진압을 운운한다. 여론이 무서워서 정작 경찰들은 그 흔한 진압봉조차 들지 못하고 방패 하나에 의지해서 시위대의 흉기에 맞서는데, 경찰 살수차가 물대포 쏘는 것 가지고 쇠파이프, 망치, 야구방망이, 죽창, 새총 등 흉기를 든 사람들이 경찰이 과잉 폭력진압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지부조화도 이런 인지부조화가 없다. 군부독재 시절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정부에 대한 트라우마가 세대를 거쳐 넘어오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선하다고 믿는 도그마의 결과다. 제 6공화국으로 제도적으로 완벽한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 시점에, 민주주의를 외치며 경찰을 때리는 짓은 이슬람 극단주의자 같은 광신도와 다를 게 없다는 게 그들이 애써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 사회 전체가 망상장애를 앓고 있다. 분명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무소불위의 권력은 바로 "국민여론"이자 "국민정서"다./사진=연합뉴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왜곡 보도, 허위 보도, 의도적 조작 보도 등에 의해 발생한 문제가 얼마나 많았나. 그들이 유도하는 각종 인민재판과 마녀사냥에 피해를 입은 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나. 대한민국 현존 최강의 권력이라 할 수 있는 '국민 여론'의 앞잡이이자 수혜자가 바로 이 언론권력 집단이다. 최악의 저널리즘을 실천하고 있는 문제 언론들, 유사 언론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누구 하나 감히 이들을 제재하자는 말을 못한다. 허울 뿐인 중재위와 방심위만 뭔가 하는 척 하고 있다.

왜? 언론은 광장에 모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식 민주주의 도그마 아래에서 절대적으로 옳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니까. 한국에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등을 도입해 의도성이 짙은 문제 보도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 민주주의 도그마 아래 '언론 탄압'이 되어버린다.

사회 전체가 망상장애를 앓고 있다. 분명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무소불위의 권력은 바로 "국민여론"이자 "국민정서"다. 대통령이나 위정자를 욕하고, 놀리고, 그것을 유행하는 놀이문화로 즐기고 있는 게 이 시대다. 비판 비난 조롱을 넘어서 온갖 음모론과 유언비어를 공유한다. 소셜미디어에서 직장 상사 욕하는 것보다, 대통령 씹는 게 훨씬 쉬운 시대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권력 앞에 벌벌 떨며 침묵을 종용받는 불쌍한 민중들인 양, 이상한 망상에 빠져 언더도그마에 호소하며 자위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원한다면 광장에 모여 대통령도 끌어내릴 수 있는 나라인데, 여전히 약자 코스프레들을 하고 있는 거다.

이제는 이 망상에서 벗어날 때다. 87년 체제에서 한 걸음 나아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고민할 때다. 이 민주주의의 유년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피터팬으로 남게 될 것이다. 설익은 민주주의가 곧 종교가 된 사회. 도그마가 지배하는 사회. 비뚤어진 종교와 교리가 세상을 지배하던 중세 암흑시대가 이랬다. 이제는 '진짜' 민주주의를 위해 외부 권력과 맞서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 권력을 스스로 견제해야 할 때다. /우원재 자유기고가

   
▲ 한국의 정치적 이해 수준과 문화감성은 80년대 운동권에 머물러있다. 독재를 경험해본 적 없고, 권력의 무서움을 느껴본 적 없는데, 386 운동권 세대의 투쟁정신에 매몰되어 있다./사진=미디어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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