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신코(信仰)와 덴코(전향:轉向) 2
    
"네가 성자냐?"
"아니요."
"네가 성자라던데?"
"아닙니다." 
"개새끼, 말대꾸 하지 마."

김관출의 따귀 세례가 곧 바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솥뚜껑만한 손이었다. 웬만한 흉기나 다름없는 그의 손이 손양원의 빰을 사정없이 후려갈기자 손양원은 구타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썩은 고목나무 쓰러지듯 시멘트 바닥에 큰 대자로 뻗어 널브러져 누웠다.

김관출은 광주 교도소에 있는 조선인 간수 가운데 친일 성향이 가장 강했고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출세욕도 엄청났다.

그는 백정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아 총독부 지시에 대해서는 맹목적으로 충성을 바쳤다. 모든 것이 일본 천황을 위한다는 명목이었다.

구한말 세도 정치로 나라가 문란해지고 지방 토호들이 득세를 하면서, 그의 아버지는 지방 관리들과 인근 유지들에게 핍박과 수탈을 부지기수로 당했다.

하지만 온 세상이 다 썩어 있어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어디에도 토로하지 못하고 가슴이 미어터지도록 울분을 누르고 다지며 살아오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되고 사농공상의 신분제도가 철폐되자 뛸 듯이 기뻐하며 쌍수를 들어 그의 아버지는 새 세상을 반겼다.

긴 세월 동안 가슴에 쌓여 있던 기존 사회 질서에 대한 그의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한 것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일본인으로 바뀌자 그는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했다.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학교로 보냈다.

쌀이 떨어져 먹을 것 못 먹고 천을 살 돈이 없어 헤어진 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그가 자식들에게 굳이 신교육을 시켰던 것은 자식들만큼은 절대 자신과 같이 세상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비루한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던 일념 하나뿐이었다.

그의 큰 아들이 김관출이었다. 어릴 적 불리던 이름이 삼돌이었는데, 소학교를 보낼 무렵에는 개명을 하며 관출로 바꾸었다. 관직에 나가서 출세를 하라는 그의 아버지의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자식 공부에 이렇듯 부지런을 떨고 노심초사했던 그의 아버지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살아생전에 자식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런 유언 같은 이야기를 되뇌곤 했었다.  
 
"어차피 세상 바뀌어 버렸어야, 임금도 없응께 인자는 천황 폐하께만 충성 바치면 되야, 그라면 출세 길이 열린께, 딴 맴 묵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만 혀서, 이 애비 한 좀 풀어 다고, 절대로 너그들은 내처럼 천한 백정으로 살먼 안된께, 알았어야?."

나라의 주인이 누가 되든지 권력은 누가 잡든지 하는 문제는 지배계층의 관심 사항일 뿐 김관출의 아버지와 같이 천대받은 밑바닥 인생들이나 배를 주리고 있는 가난한 민초들에겐 이런 일들이 술자리의 안주거리는 될지 몰라도 실제 이들의 생활 속에서는 눈곱만한 관심도 가질 일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이들이 제일 반기는 세상은 배부르고 등 따듯하고 자식들 잘 보살펴 줄 수 있고, 담장을 나란히 하고 있는 이웃과 오순도순 사는 그런 세상이었다.

아무튼 아버지의 유훈 탓에,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비참한 생활을 강요했던 조선에 대한 반감이 매우 깊었고, 신분 차별의 벽을 없애 자신들을 구해준 일본을 자신들의 은인이자 진정한 조국으로 여기며 일본 천황에 대해 충성을 맹세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일본의 안정을 위협하는 인물이나 일본 천황을 모독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들로 인식해서 이들에 대해 아주 악랄하고 지독하게 대해, 그 잔인성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키가 육척에 눈은 왕 눈을 가진 개구리마냥 툭 불거져 나오고 입술도 두툼해서 생김이 괴물처럼 기이해 한눈으로 보아도 매우 험상궂었다.

죽지 않을 만큼 패서 묵사발로 만들어 놓으라는 요시다의 지시를 받은 김관출이 손양원을 교도소 후미진 곳에 있는 독방으로 끌어내어 고문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잠깐 의식을 잃었던 손양원이 정신을 차리자, 그가 손양원에게 멱살잡이를 하고는 그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는 눈을 부라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넌, 왜 너한테 주는 밥을 안 먹고 딴 놈에게 주냐?"
"난 적게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그럼, 너한테 아예 밥을 주지 말까?"
"적게 먹어도 된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굶어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너 지금 나한테 반항하는 거냐? 이 새끼가!"

   
▲ 영화 '1987' 스틸 컷.

빨래 줄에 걸린 생선마냥 그의 손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던 손양원을 김관출이 그대로 시멘트 바다에 패대기를 쳤다.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거꾸러진 그의 이마에서 피가 낭자하게 흘러내렸다. 그가 고통을 못 이겨 비명을 질렀지만, 김관출은 동물원 원숭이 보듯 비웃음을 던지며 이죽거릴 뿐이었다.

"병신새끼, 이 새끼야 육갑하지 마, 그것도 못 참아?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하느님한테 빌어 봐, 이 새끼야, 너를 구해달라고 빌어, 응! 이 새끼야, 왜 말이 없어? 귀구멍이 막혔어, 아니면 내 말이 우습게 들리냐? 이 좆같은 새끼, 여기선 이 새끼야, 내가 하느님이야, 내가 구세주라고 알아? 너 땜에 나 존 나게 화났거든 이 개자식아!"  

그는 손양원을 향해 빗발치듯 육두문자를 쏟아내다가 피를 흘리는 그를 보고도 아직 성에 차지 않았는지 바닥에 쓰러진 손양원의 턱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툭 쳤다.

손양원을 마음을 자극하기 위한 김관철의 술수였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모욕감에 몸서리치다가 소리라도 버럭 질렀을 것이다. 그럼 이걸 빌미로 김관철은 다시 주먹을 날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손양원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그를 용서해달라고 허느님께 기도를 올렸다. 뼈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손양원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더 김관철을 담담하게 대했고, 냉정을 유지하는 손양원의 모습에 김관철은 더 약이 올랐다.

핏발이 성성한 그의 눈엔 살기가 등등했고 원수를 대하는 듯 증오의 빛까지 가득 서려 있었다. 이 때문에 손양원에 대한 김관출의 구타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죄수들에게 성자로 불리고 있는 손양원, 그가 왜 간수 김관출에게 이런 모진 구타를 당하고 있는 것일까? 요시다의 은밀한 지시와 부추김도 있었지만, 이들 사이에 얽혀있는 나름의 또 다른 사정이 있었다.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주어지는 밥은 주먹만 한 크기의 보리밥 한 덩이가 고작이었다. 성인의 한 끼 식사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서 많은 죄수들이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돌아서자마자 늘 주린 것처럼 허기를 느끼곤 했다.

사정이 좀 나은 사람들은 돈이라도 써서 사식을 반입해 자신들의 주린 배를 채우곤 했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항시 곤란을 겪었다. 

비록 가난해도 붙임성이 좋은 사람들은 부자 죄수들이나 간수들에게 들러붙어, 자신들의 배고픔을 눈치껏 해결하곤 했지만, 돈도 없고 배경도 없고 말재간도 부족하고 달리 다른 재주도 없는 사람들이 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들은 그냥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밤새 구르거나 물로 배를 채우거나 이것도 아니면 병자들이나 누군가가  먹다 남긴 음식을 두고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치고 박는 쟁탈전을 벌이기 일쑤다. 이 때문에 감옥 안은 늘 시끄러웠다. 다투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밖으로 실려 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손양원은 사람들의 이런 아귀다툼을 보다 못해 자신은 덩치가 작아서 많이 먹지 않아도 된다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이 받은 밥의 절반을 뚝 떼어 허기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간수들이 구박해도 미소를 잃지 않고, 예수의 말씀을 전하면서 쉽지 않은 이런 선행까지 흔쾌히 베풀다보니,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성자’라는 별칭이 따라 붙었다.

김관출은 옥중의 죄수들이 한 주먹꺼리도 안 되는 작달막한 손양원을 성자로 부르는 것이 몹시 못마땅했다. 이전에 죄수들은 자기 앞에 서면 호랑이 앞의 토끼처럼 알아서 설설 기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죄수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었다. 표정도 밝아졌고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예전처럼 비굴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이런 모습이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무시하는 거만한 태도라 생각해 화가 났고, 이런 사람들을 볼 때 마다 목에 깁스를 한 느낌이 들어 싸리나무 분지르듯 모가지를 비틀어 놓고만 싶었다.  

광주 교도소에 이 같은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손양원 때문이었다. 그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옥중 죄수들은 박이 터지도록 싸웠다. 염치도 몰랐다. 자존심도 없었다. 자존감도 낮았고 오로지 욕망대로만 살았다.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짓밟는 비열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당연히 신의도 없었다. 모두의 인간성이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옥중의 모습은 동물의 왕국 그 자체였다. 이 때 손양원이 불쑥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은 손양원의 말 없는 행동에 감화를 받기 시작했다. 용서와 사랑, 희생이 몸에 밴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그들은 손양원이라는 사람을 통해 처음으로 알 게 된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개벽하듯 싸움이 멈추었고, 사람들이 잃어버린 염치란 놈도 알게 되었다. 강물이 살아나자 물고기가 돌아오듯, 죽었던 양심이 살아났고 덩달아 그간 까맣게 잊고 있던 자존감까지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회복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죄수들이 잃어버린 자신들의 자존감을 회복한다는 것은 밑바닥 인생으로 살고 있던 당사자들에겐 실로 가슴이 뛸 만큼 벅찬 기쁜 일이다.

그러나 이들을 통제하고 단속하는 간수들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스스로에 대한 이들의 각성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죄수들이 자신들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고 저항하고 복종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죄수들의 도덕성 회복은 사실 교정 당국이 범죄 예방 차원에서 제일 먼저 기획하고 추진해야 할 자신들의 책무이기 때문에, 죄수들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것이 간수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김관출처럼 죄수들을 혹독하게 다루어 이들의 원성을 크게 사고 있거나 죄수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손쉽게 돈을 벌고 있는 간수들에겐 죄수들의 이 같은 의식 변화는 큰 문제였다. 

상당수 간수들이 박봉 때문에 죄수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돈을 벌었다. 물론 이것은 교정당국에서도 철저하게 금하고 있는 엄연한 불법이었다. 하지만 죄수들을 상대로 간수들이 벌이는 장사는 당국의 묵인 하에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간수들 중 가장 대표적인 장사꾼이 김관출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백정 출신이었듯이 배경은 비록 미천했지만, 버는 돈을 혼자 갖지 않고 교활하게도 여기 저기 나눠 주는 바람에 감옥소 안에 있는 간부들치고 그의 돈을 먹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감옥소장이 일개 간수에 불과한 그에게 쩔쩔매는 것도 모두 김관출이 뿌린 돈의 힘이었던 것이다. 

소장을 비롯한 여러 간부들의 비호를 받은 덕분에 그는 죄수들을 상대로 겁 없이 장사를 했다. 술과 담배를 물론이고 마약이며 여자까지 그는 취급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그는 가리는 것이 없었다. 돈이 권력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손양원이 온 후 감옥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져 김관출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은밀하게 돈을 건네며 술과 담배를 구하던 사람들이 발길을 돌렸고, 여자와 마약에 탐닉했던 사람들의 발길도 차차로 줄었다. 돈에 목숨을 걸고 있던 그로서는 눈이 뒤집힐 지경이 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간수들이 감옥에서 죄수들을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한 첫 번째 전제 조건은 감옥이 절대 깨끗해서는 안 되고 악취를 풀풀 풍기는 시궁창처럼 썩은 냄새가 진동하도록 썩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악함 때문에 멸망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처럼 죄수들이 서로 짐승처럼 싸우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어느 한 귀퉁에 숨어 마약에 취해서 비틀거리고, 발정 난 수캐의 거친 신음소리를 내며 여자를 끌어안고 바닥에서 나뒹굴어야만, 김관출과 같은 처지의 간수들이 돈을 벌 수 있었다. 그것도 큰돈을. 감옥에서의 돈벌이는 부패의 곰팡이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김관출의 수입은 손앙원이 광주 교도소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전성기 때의 절반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수입이 줄었다고 뒤를 봐주는 사람들에게 주는 뇌물까지 줄일 수는 없었다. 돈에 눈이 먼 간부들이 김관출의 세세한 사정까지 봐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곳간까지 열었고, 여기저기에다 끊임없이 기름칠을 하고 나니 시쳇말로 개털이 되고 말았다.  

발바닥에 땀이 나고 불알이 요령 소리가 나도록 뛰어다녀도 자신의 처지는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해서 실익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어, 그로서는 죽 쑤어 개 준 꼴 밖에 되지 않았다. 당연히 그는 손양원만 생각하면 치가 떨렸고 그를 보고 있노라면 이가 갈렸다. 날밤 씹 듯 오독오독 씹어도 먹고 싶을 만큼 그가 미웠다.

신사 참배를 거부해 자신이 하늘같이 떠받드는 일본 천황을 모독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장사까지 망쳐놓고, 거기에다 더해서 사람들까지 선동하고 나섰으니 그에게 손양원은 갈아 먹어도 시원치 않을 원수가 된 것이었다.

이젠 주일날이면 광주 감옥소 후원은 경건한 예배의 장소로 변했다.  손양원의 뜨거운 신앙심에 감화되어 신앙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었고, 예배는 손양원의 주관 하에 열렸다. 예배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하나 같이 그를 목사님이라 불렀고 그를 둘러싸고 환호하는 사람들의 눈빛 속에서는 살아 있는 예수를 대하는 듯 해 보이는 경건함과 존경심이 묻어났다. 

이런 모습으로 보고 있노라면 김관철은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의 몸은 증오가 부른 신열에 휩싸여서 춤을 추었고, 마음 같아서는 후원에다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러 모두를 화마에 태워 하늘로 날려 보냈으면 하는 심정이 굴뚝같았다. 그는 예배를 주관하고 있는 손양원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혼자 되뇌었다.

"수인번호 770, 넌 언젠가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그에 대한 살의를 가슴 깊이 품어 오고 있던 터라, 그를 요절내놓으라는 검사 요시다의 은밀한 지시는 칼춤을 추고 싶은 망나니에게 멍석을 깔아 준 것이나 진배가 없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그는 오랜만에 근질근질했던 주먹을 맘껏 풀면서 마른 명태 두들기듯 몽둥이와 주먹질로 손양원을 흠씬 두들겨 패고는 그가 혼절하여 미동도 않자 그제야 주먹질을 거두고 나갔다. <계속>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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