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신코(信仰)와 덴코(전향:轉向) 4
                           
두 사람이 대좌를 한지 반나절이 넘어 중천에 떠 있던 해도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면서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그럼에도 요시다는 별로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이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이날의 만남이 중요하다는 걸 의미했다. 역시 요시다는 프로다웠다. 한번 감춘 발톱은 좀체 드러내지 않았고, 마음을 먹자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일본에 병합을 당한 조선의 억울한 입장을 마치 조선인처럼 대변하질 않나, 맛있는 점심을 내어오지를 않나 자신의 학창시절이며 고등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의 일까지 수다쟁이처럼 마주알고주일 늘어놓았다.

모두가 손양원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몸짓이었는데, 평소 안하던 짓을 너무 천연덕스럽게 하다 보니 손양원은 그의 속을 몰라 잠시 혼란스러웠다.  

사람의 일이란 때로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지만,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어 외견상 오늘의 면담 분위기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장시간의 대화에 피로를 느꼈는지 요시다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긴 하품을 했다. 그가 기지개를 한번 크게 키고는 손양원을 보고 싱긋 웃었다.

"손 목사, 차 한 잔 하시겠소?"
"아무 거나 주시오."
"재스민 차가 어때요? 상해에 사는 친구가 선물로 준 것인데, 맛이 괜찮아요."
"맘대로......"

그는 비서를 불러 차를 부탁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서가에 꽂힌 레코드판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장미꽃 잎사귀로 수를 놓은 화려한 축음기 위에 올린 후 바늘을 그 위에 부드럽게 올렸다. 바늘은 마치 얼음판 위를 지치는 스케이트 날처럼 판위를 미끄러져 빙그르르 돌아가면서 가사가 심상치 않은 노랫말을 토해 내었다.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 만세 부르고
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쓰는 사연
나랏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해군의 지원병을 뽑는다는 이 소식
손꼽아 기다리던 이 소식은 꿈인가
감격을 못 이기어 손끝을 깨물어서
나랏님의 병정 되기 지원합니다.

나랏님 허락하신 그 은혜를 잊으리
반도에 태어남을 자랑하여 울면서
바다로 가는 마음 물결에 뛰는 마음
나랏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간절함을 담뿍 담은 트롯 풍의 이 군가는 요즘 조선에서 유행하고 있는 혈서지원가라는 노래였다.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의 대대적인 반격을 받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자, 일본은 총력전에 나섰고 참전에 대한 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조선 총독부가 친일 음악가들을 동원해 만든 노래였다.

총독부의 독려 하에 이 노래는 조선 팔도 방방곡곡으로 전파되고 있었고, 바깥세상과 높은 담을 쌓고 있는 감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국민총화(國民總和)라는 이름으로 운동시간만 되면 감옥소 스피커를 통해 이 노래를 앵무새처럼 틀어 대어 손양원도 이미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노래였다.

하지만 의식이 있는 조선 사람이라면 노랫말이 귀에 아주 거슬렸다. 이 노래는 전장에 나가 일본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다짐하는 충성가나 다름없으니 달가울 리가 없었다. 손양원도 마찬가지였다.

면회를 오는 아내와 아버지는 물론이고 자신이 담임 목사를 맡고 있던 여수 애양원 교회의 지인들을 통해, 학도병으로 뽑혀간 젊은이들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도 들었고, 일본이 미국에 밀려 태평양 지역에서 점차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이제 전쟁도 머지않아 끝이 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젊은이들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들판에서 죽어간다는 데는 마치 자기 자식을 잃은 것처럼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고, 전쟁이 곧 끝난다는 소식에는 바람난 사람처럼 가슴이 들떴다.

아무튼 늘 듣던 노래를 쿠션이 훌륭한 요시다의 집무실 소파에 앉아 그의 축음기를 통해 듣는다고 느낌이 달라질 게 없었다.

요시다는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듯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이 노래를 3절까지 다 듣고는 감회에 젖어 촉촉해진 눈길을 손양원에게 던졌다.

"손 목사, 이 노래 어떠시오?"
"난 노래에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소."

손양원의 말에 그가 빙긋 웃었다. 요시다는 그가 이 노래를 탐탁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른 척을 했다.

"이 노래는 말이요, 조선 사람들이 만들어 천황 폐하께 바친 노래인데 아주 인기가 좋아요."
"그래요?"
"소학교 운동회 날 운동장에서도 이 노래가 울려 퍼진다고 하지 않소. 눈이 새까만 어린  놈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린다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지 않소?"

정말 요시다는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손양원은 냉혈한처럼 차디찬 그에게도 이처럼 여린 감상적인 데가 숨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는 일본인 입장에서는 애국자임이 분명했다.     

"난 이 노래를 들으면 피가 마구 끓어요, 손 목사는 어떠시오? 피가 끓는 느낌이 안 드시오?"
"글쎄요......."

눈썹이 꼿꼿하게 선 요시다의 얼굴 표정은 자기감정에 취해 너무 진지했고 목소리도 다소 들떠 있었다.

   
▲ 영화 '남영동 1985' 스틸 컷.

두 사람의 감정과 생각엔 출신 배경만큼이나 엄청난 큰 차이가 있었다. 한 쪽은 지배자의 입장을 대변했고 다른 쪽은 식민지 시민의 입장을 대변했다. 병합으로 두 나라가 한 나라가 되었다고 해서 양쪽의 감정과 생각까지 판박이처럼 같아질 수는 없는 일이다. 대내외적으로는 손양원이 일본국 국민으로 불리고 있으나, 그는 자신을 나라의 주권을 억울하게 빼앗긴 식민지 국가의 시민이라 생각했다.

요시다의 물음에 그가 달리 할 말이 없어 얼버무리듯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리자, 그가 재차 물었다.   

"아무런 감흥이 없소?"
"내가 이팔청춘도 아니고 이 나이에 노래하나 듣는다고 무슨 흥이 나겠소?"

손양원의 무뚝뚝한 반응에 지금까지 매우 친절했던 요시다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손 목사, 유감입니다."
"뭐가요?"
"손 목사는 어느 나라 국민입니까?"
"......."
"제가 묻지 않습니까?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
"왜 대답을 않고 있습니까? 손 목사는 아직도 자신이 조선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까?"
"그렇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끝없는 친절을 베풀던 요시다였다. 그런데 그가 태도를 바꾸어 손양원을 서서히 압박해 나가고 있었다. 호의를 베풀어 방심을 유도한 후 그 사이에 드러나는 허점을 천천히 파고드는 그런 모습이었다. 말하자면 허허실실 전법이다. 

손양원은 자신이 요시다의 계략에 빠진 것을 알았지만 굳이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서 빠져나가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이것은 조선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의 문제라 생각했다.

"합병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당신이 내 입장이라면 어떻겠소?" 
"하하, 뜻밖인데요."
"......"
"손 목사, 내가 그래도 명색이 검사인데, 내 앞에서 너무 함부로 말하는 것 아니요? 내가 겁나지 않소?"

요시다는 검사로서의 동물적인 감각을 발휘하며 무리하지 않고 사냥감을 몰아가듯 손양원을 구석으로 조용히 몰고 있었다.

금방 손양원이 얘기한 것만으로도 요시다가 그에게 씌울 수 있는 죄목은 많았다. 사상적으로 불온하다고 판단되면 선동죄, 치안 유지법 위반 등을 적용할 수 있고, 나아가서 천황에 대한 충성심 부족을 사유로 들어 황실에 대한 모독죄도 적용할 수 있는 여지까지 있었다. 그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고는 눈을 길게 찢어서 그를 잠깐 쏘아보더니 다시 싱긋 웃었다.   

"난, 말이오, 비록 당신하고 좋지 않은 인연으로 만났지만, 당신이 좋았소, 내가 좋아하는 사무라이를 닮았거든요, 패기도 있고 정의감도 있고, 남자라면 대장부라면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당신을 풀어주고 싶었소,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단 말이요! 그런데 당신이 합병을 부정하고 스스로 조선 사람이라고 자꾸 생각한다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어요, 조금 전에 내게 한 말을 다시 수정할 생각 없소? 말만 바꾼 다면, 내가 없던 일로 하고 당신을 당장 석방할 용의가 있소, 어떠시오?"

손양원은 요시다의 생각이 어이가 없어 쓴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에게 선고된 형(刑)이 만료를  보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의 식구들도 애양원(주: 전남 여수에 있는 한센병 환자 수용 마을) 가족들도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지금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의 아내는 그를 위해 안방을 도배하고 이불호청을 갈고, 그와 종교 생활을 같이 해 온 애양원 식구들은 그동안 주인을 잃고 먼지만 잔뜩 쌓여 있던 교회를 청소한다고 모두 분주했다.

형 만료로 자동 석방이 임박한 마당에, 말을 정정하면 석방을 해준다니! 그야말로 조삼모사로 그로서는 기도 안 찰 일이었다.

중국 송 나라의 저공(狙公)이 자신이 키우는 원숭이와 먹이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아침에 세 개 주고 저녁에 네 개 주던 도토리를 아침에 네 개 주고 저녁에 세 개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그에게 넙죽 절하고 기뻐했다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얘기와 요시다의 말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요시다의 속을 그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허참, 난 검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소, 설마 내 석방 날짜가 얼마 안 남았다는 건 모르고 있진 않겠지요?"
"이 요시다가 손 목사님처럼 유명한 양반 석방 날짜를 모른대야 말이 되겠소? 허나 당신이 고집을 부리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무슨 뜻입니까?"
"손 목사님, 구금소에 대해 들어봤습니까?"  

법적 장치와는 별도로 조선총독부는 사회적으로 위험인물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의 인신을 자신들 임의대로 구속하여 가두는 구금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구금소를 설치하며 표면상 내건 명분은 불령선인들의 교화를 위한 것이었다.

"......"

순간 손양원으로 머릿속으로 불길한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 지나갔고 요시다의 이어진 발언이 그의 생각을 아주 친절하게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었다.

"손 목사,  당신은 형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 문제를 아주 쉽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당신 감옥에서 나갈 수 없어요!"  
"뭐요?"
"당신이 전향을 거부하면, 어쩔 수 없소, 교화를 위해 당신을 구금소로 넘길 수밖에......"

요시다의 눈이 예리하게 빛이 났다. 그의 눈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을 닮아 있었다. 손양원을 자신을 향해 던지고 있는 그 소름 돋는 음흉한 눈길을 피해 스스로 눈을 질끈 감았다. 요시다의 얼굴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도 분노를 알았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끌려와 이런 저런 조사를 받느라 억울하게 구치소에서 일 년 반을 보냈고, 형을 받고 감옥소 생활을 하느라 또 일 년 반이 지났다. 도합 삼년이 넘은 시간이었다. 삼년을 손곱아 기다린 석방이 일장춘몽으로 끝날 처지였다. 두 달 전 아내의 손을 잡고 면회를 왔던 막내의 까만 눈망울이 눈에 선했다. 그 어느 새벽 별빛보다 더 환하게 빛을 내며 꺼지지 않고 그의 가슴에서 늘 반짝 반짝 빛을 뿌리던 눈동자였다.  

요시다의 말은 이미 그들이 마음을 먹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들이 작정을 했다면 자신의 석방은 물 건너간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가 지내 온 시간들은 기도와 그 아이의 새까만 눈동자를 생각하며 버틴 인고의 시간들이었다. 손양원은 순간 맥이 풀리며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이 때문에 그의 목소리에는 다소 힘이 없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매서웠다. 

"형이 끝난 사람을 굳이 더 붙잡아 두는 이유가 뭐요?"
"아까 내가 말하지 않았소? 내게 했던 말을 취소하라고, 좀 더 확실하게 얘기하면 신사참배 거부에 대하 태도를 바꾸라는 것이요."
"그 때문에 나를 붙잡아 둔다면, 천년이고 만년이고 나를 가둬 두어야 할 것이오."
"이보시오? 손 목사, 왜 그렇게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시오? 당신한테 목회 일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기껏 신사에 참배 좀 하라는 것인데, 왜 그걸 못한다고 고집을 피우냔 말이요, 좀 편안하게 삽시다, 대체 종교가 뭐요? 예수가 뭐요? 일단 집엔 가야 하지 않겠소?"
"허허, 요시다 검사님, 말씀 한번 잘 하셨소, 나도 편안하게 살고 싶소, 단 하루를 살아도 말이요, 주님 앞에 떳떳하게 살고 싶단 말이요, 검사님에겐 전향(轉向)이 중요한지 모르나 내게는 신앙이 목숨보다 더 중요하오, 주님이 있는 곳이 곧 내 집이요, 그러니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오."

자신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손양원을 향해 요시다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손양원을 으르고 달랬지만 결국 그의 전향을 끌어내는데 실패했고, 손양원은 사상적으로 위험한 불령선인이란 이유로 광주 감옥소에서 서울 구금소로 신병이 이관되었다가 훗날 다시 청주 구금소로 이관되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미국의 원폭 투하로 전쟁이 끝나자 그 때서야 영어의 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신사 참배 거부 문제로 여수 경찰서로 끌려간 지 만 오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계속>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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