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애양원 교회-2

애양원 교회 식구들의 특명을 받고 권 집사는 애양원이 있는 신풍리 역에서 기차를 타고 순천, 하동을 거쳐 진주로 갔다.  진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진주 교회에서 손목사가 주재하는 부흥회가 오늘 열리기 때문이었다. 

새벽안개를 가르며 한적한 바닷가 시골 마을을 떠난 기차는 오후 세 시 쯤이 되어서야 진주역에 도착했다. 아직 저녁 부흥회까지는 세 시간의 넉넉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권 집사는 진주에 올 때부터 내심 생각한 바가 있어 손목사가 유숙하고 있는 봉래동의 진주 교회로 곧장 가지 않고, 남강 다리 밑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촉석루의 의암 바위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강가의 모래톱엔 눈대중으로 보아도 수십 명은 되고도 남을 걸인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가 누르스름하게 빛이 바래가는 방죽 풀밭 길을 비스듬히 타고 강가로 내려서자, 그 중의 누군가가 두 팔을 벌려 갈고리처럼 생긴 두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권 집사, 왔는가!"
"박 대장 오래만이야."

그가 대장이라 부른 이는 남강 다리 밑에서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걸인들의 우두머리로 용력도 있는데다 통솔력도 대단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동료들은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고향이 권 집사와 같은 경상도 산청으로 소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 사이기도 했다.

그가 반년 만에 진주에 들리면서 박 대장을 찾아 온 것은 친구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손 목사 때문이었다.

그는 손목사의 고집이 워낙 세어 자신의 뜻을 쉽사리 꺾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의 고집을 꺾기 위해 오랜 친구의 힘을 빌리고자 했던 것이다.

손 목사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형사에게 붙들려가서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불이익을 받을까 겁이나 등을 돌렸다. 서슬 퍼런 총독부의 감시의 눈길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데도 한센병 환자라는 낙인이 찍혀 세상의 온갖 냉대에 시달렸던 진주의 박 대장이라는 사람은 손 목사의 구속으로 그의 식솔들의 생계가 막막해지자, 지금이야말로 여태껏 자신들의 친구를 도운 진정한 한센병 환자들의 친구 손양원 목사를 도와야 할 때라며 자진해서 동료들을 동원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슬픔에 잠겨 있던 그의 가족들을 적극 도운 사람으로 각박한 세상의 인심을 훈훈하게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의리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참 대장부였다.   

이런 인연이 있어 손목사가 출옥 후 그와 여러 차례 만났고, 몇 번 되지 않는 만남이었지만 둘은 오랜 지기를 만난 듯 호형호제 하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는 후일담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가며 서서히 익어가는 은근한 술맛도 일품이지만,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 풋사랑에 가슴 떨리듯 한순간에 푹 익어가는 질펀한 우정도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만큼이나 아름답다.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따뜻한 마음이 서로의 아픔을 포근하게 감쌀 줄 아는 여유의 멋을 알기 때문이다.

손양원이 박 대장의 진심어린 후의에 큰 감동을 받았던 터라, 그를 통하면 손양원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적지 않은 보탬이 되리라 생각했다.  

박 대장은 권 집사의 설명을 다 듣고 나더니 들풀처럼 어지럽게 솟아난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하모, 하모 그래 네 말이 꼬재이다, 암 그래야제, 은혜를 알아야 사람인기라."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에 위치한 손양원유적공원 '용서와 사랑' 기념조형물. /사진=애양원 홈페이지

애양원 교회-3

부흥회의 열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지, 부흥회가 끝난 지 두 시간이 훌쩍 넘어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 되었었음에도 모두 술에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처럼 얼굴이 붉으래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목사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허허, 입은 삐틀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하느님이 진주시민들에게 내린 뜨거운 축복이 엄청난 것이지요."
"하하,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부흥회가 끝나고 열린 작은 다과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대단히 만족스런 표정들이었다.

손양원의 유명세 덕에 진주 교회 부흥회에 모인 사람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사람이 넘쳐 2층 규모의 예배당에 발을 디딜 데가 없었다. 결국 사람들이 교회 앞 신작로로 나가야 했고,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거적을 깔고 앉아서는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느님이 베푼 은혜를 뜨겁게 체험했다.

"여러분, 해방을 맞은 우리에겐 참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돌보아야 할 우리의 이웃도 많습니다,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들도 있습니다, 육신의 굶주림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굶주림도 중요합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일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싶지요? 축복을 싫어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있으면 손 한번 들어 보세요, 보십시오,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에 목이 마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 자리에 입추의 여지도 없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게 모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체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앉은 자리에서 기도만 하면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믿음이 뜨겁고 믿음이 단단하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물론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 기도하는 게 낫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느님은 말이지요, 기도만 해가지고는 절대로 감동을 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머리가 좋으시거든요! 똑똑하신 분이거든요! 아마 그 분보다 머리가 좋은 분은 이 세상에 없을 겁니다, 아인슈타인이란 사람이 머리가 좋다고 하지요? 하지만 그 사람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까? 기껏 사람 죽이는 원자폭탄 하나 만든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느님밖에는 없습니다.

그런 분이 어찌 우리의 세치 혀가 하는 말장난을 분간하지 못하겠습니까? 하느님은 우리가 엄마의 뱃속에 수태가 되는 순간부터, 아니 저 우주에서부터 날아와 어머니의 뱃속에 하나의 생명으로 자라나기 이전부터 아주 오랜 옛날부터 말이지요, 그분은 우리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난 이후에도, 우리의 육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분은 우리의 영혼을 영원히 지배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어찌 우리를 모르겠습니까? 이렇게 능력이 출중한 분이 어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우리의 새빨간 거짓말을 구별하지 못하겠습니까?

세치 혀의 거짓이 하느님을 화나게 하듯 진정성이 없는 기도 역시 하느님을 실망시킬 것입니다. 어쩌면 등을 돌리신 하느님에 의해 유황불에 던져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그 무엇을 우리 손에 넣으려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세상에 공짜가 있습니까? 없지요! 단연코 없습니다. 스스로 수고를 하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우리의 몸에 저장된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우리는 그 무언가에 대해 그 대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공짜란 없습니다, 하느님의 축복도 하느님의 은혜도 공짜는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님이 우리에게 감동을 하시고 그래서 축복을 내려 주실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바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몸소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살아있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죽은 믿음입니까?"

야고보 서 2장의 말을 인용한 그의 강론에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듣고 있다가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호했고, 주 예수를 연호하며 자신들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훔쳤다.

부흥회는 신앙에 대한 뜨거운 마음으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 손양원은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세상에서 제일 천대받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그들의 벗이 되고 그들의 가족이 된 사람으로, 신앙에 대한 믿음을 그리고 사랑을 행동과 실천으로 구현한 믿음의 산 증인이었다.

그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이란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그 깊은 뜻을 일치된 언행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장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는 그의 희생과 노고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식이었다.

어둠의 세상이 물러가고 빛의 세상이 오자, 볼 품 없는 오 척 단구의 시골 목사가 드디어 세상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거인이 된 것이다.

사람들이 썰물 같이 빠져 나간 밤늦은 시각, 관계자 몇몇만 남은 교회당은 철 지난 바닷가 모래사장처럼 썰렁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의 귀전에는 여전히 열렬한 박수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의 얼굴이 너나 할 없이 모두 홍조를 띠고 있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권 집사는 손양원과 함께 여러 집회를 다녀봤지만 오늘처럼 뜨거운 집회는 생애 처음으로 경험했다.

진주 시민들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조 멸망의 서막이 된 철종 임금 때의 민란이 진주에서 일어나게 된 것도 부흥회에 참석한  진주 시민들의 열광적인 태도를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지리산을 등에 지고 남해를 가슴으로 품고 있는 진주는 아름다운 이름과는 달리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정의 도시였다.

아무튼 권 집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진주 집회의 열기를 보고는 손양원을 더 아상 작은 우물에만 가두어 둘 순 없다는 확고한 생각을 다시금 했다. 

그는 자리를 같이하며 유쾌한 목소리로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던  교회 담임 목사가 사모의 호출로 자리를  뜨자, 기회는 이 떼다 싶어 자리를 함께한 박 대장에게 눈짓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목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요?"
"목사님에 대한 일입니다."
"저에 대해서요?"

손양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빙긋 웃으며 말해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목사님의 거취에 대한 이야깁니다."

권 집사의 말에 손양원의 야윈 얼굴이 일순 굳었다. 감옥에서 고생이 심했던 탓에, 그는 아직도 어지간한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해 마른 멸치처럼 몸이 삐쩍 말랐고 눈은 십리도 더 들어간 사람처럼 우묵했다.

다소 떨떠름해 보이는 그의 인상은 권 집사의 말이 그에게는 뜬금이 없는 얘기로 비쳤던 모양이었다.

그는 풀어진 넥타이를 다시 매만지고는 권 집사의 다음 얘기를 기다리며 다소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았다. 

"목사님, 초량 교회의 제안을 받아들이셨으면 합니다, 애양원 교회 식구 모두의 뜻입니다."  
"권집사, 난 이미 결심을 했어요, 내겐 애양원 교회밖에 없습니다."
"아닙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이제 더 큰 교회로 가셔야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주님의 곁으로 인도하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목사님, 이젠 애양원처럼 작은 시골 교회는 다른 목사님께 맡기시고 목사님은 더 큰 일을 하셔야 합니다, 해방이 되었고 나라가 혼란스럽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목사님처럼 사심 없는 분이 나셔서 사람들을 계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 대장까지 권 집사의 말을 거들고 나서는 바람에 그가 난처해하지 않을까 싶어 손양원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미처 다 못하고 입을 꼭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애양원에 발을 들일 때부터 그는 이곳에 자신의 뼈를 묻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언제나 자신의 이 소원이 꼭 이루어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신앙의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그의 유일한 꿈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친구로 살다 간 예수의 길을 자신도 똑 같이 걷는 것이었다. 

그는 권 집사와 박 대장이 자신에게 이직을 권하는 이유를 굳이 그들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여태껏 고생을 했으니 이젠 가족을 위해 가시밭길 대신 꽃길을 한번 걸어보라는 뜻임을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소망해 온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 간절해 보여 면전에서 딱 부러지게 거절을 못했다.

"애양원 식구들의 뜻이 그러신다면 생각은 한번 해보겠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손양원은 권 집사가 고개를 조아리며 자신에게 낯 뜨거운 치사를 하는 바람에 너무 민망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인가? 주객이 전도 되어도, 일의 시말이 뒤집어져도 한참 뒤집어진 아주 기이한 꼴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손양원은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눈물겹도록  고마워 그들을 보고 소년 같은 웃음을 빙긋 지어보였다. <계속>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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