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한 대응 법무부, '예정된 인재' 책임론 커져
정부, 미결 수용자 보호 의무 저버렸다는 비난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서울 도심 속에 위치한 아파트형 교정시설인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집단감염 사태가 일어나면서 예정된 인재(人災)였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4일 방역당국과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를 기준으로 동부구치소 관련 확진자는 총 1090명(출소자 포함 수용자 1047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수용자가 2419명인 것을 감안하면 5명 중 2명 꼴(43.3%)로 코로나에 감염된 셈이다.

이는 지금까지 국내 집단감염 사례 중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5213명),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1173명)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다. 하루이틀만 더 지나면 사랑제일교회를 제치고 두번째로 큰 규모 사례에 등극할 것으로 전망된다.

   
▲ 서울동부구치소는 재판 중에 있는 미결수용자의 구금확보 및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보안시설이다. 사진은 구치소 전경이다./사진=법무부 교정본부 제공
구치소 내 코로나 확산세는 심상치 않다. 구치소 직원 가족 1명이 지난달 27일 최초 확진 판정을 받은 후 1일까지 958명, 3일 125명(동부구치소 121명-강원북부교도소 4명)이 추가로 확진됐다.

문제는 가장 최근인 3일 확진판정을 받은 동부구치소 121명 중 15명이 밀접접촉자가 아닌 일반접촉자였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구치소 내에 무증상 전파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는 시설 관계자 등 접촉자를 포함해 총 1만 35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진단검사를 시행했고 그 결과 양성 1090명, 음성 8945명이 나왔다고 밝혔다.

법무부의 책임은 막중하다. 동부구치소 수용자는 성별·연령·범수·죄명 등을 고려해 지정된 거실에서 생활하는데, 구치소는 재판 중에 있는 미결 수용자의 구금확보 및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보안시설이다.

법무부는 수용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격이다. 구체적으로는 구치소의 부실한 대응이 집단감염 원인이 됐다는 수감자들의 추가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4일 법무부에 따르면, 여주교도소 재소자 A 씨는 지난 2월 보건마스크 자비구매를 허가해달라고 법무부 인권국에 진정을 냈지만 교정당국은 이를 진정 7개월이 지난 9월에 기각했다.

기각 전후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고 마스크 미착용시 벌금 조치가 논의되는 등 전국적인 방역대책 강화가 이뤄지고 있었지만 구치소는 예외였다.

구치소에서 마스크 구매가 가능해진 것은 동부구치소 집단감염이 시작된 지난 11월 30일부터였다. 이에 따라 법무부의 안이하고 부실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구치소는 수용자에게 마스크를 기본 지급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구매해 쓰는 것을 11월 29일까지 금지했을 뿐더러 손 소독제도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식사 중 투명가림막 설치 또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동부구치소 수용자는 성별·연령·범수·죄명 등을 고려해 지정된 거실에서 생활한다. 수용거실 내에는 TV·선반·옷걸이 등이 비치되어 있다./사진=법무부 교정본부 제공
동부구치소에서의 폭로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가족 및 지인에게 보낸 편지와 접견한 변호인을 통해 수용자들의 극심한 불안감이 세간에 전해지고 있다.

증언은 가지각색이다. "180여명의 수용자들이 강당에서 대기하는 과정에서 방역지침이 지켜지지 않았다", "전수검사 때 통제하지 않아 방 2개씩 열어서 수용자끼리 겹치고 접촉해도 말리지 않는다", "의심 환자가 있던 방에 다른 수용자들을 채워넣었다", "방역복을 쓰지 않은 직원이 마스크만 쓰고 드나들거나 아예 마스크를 쓰지 않기도 한다", "직원 실수로 확진자 수용실에 갇혔다", "확진자와 같은 방을 쓴 수용자들을 방치했고 코로나 진단검사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 "책상을 찍어도 36.5도가 나오는 불량 체온계를 사 와서 수용자들에게 못 나눠주고 폐기한다"는 등의 폭로가 속속 알려졌다.

하지만 법무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수용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교정 기관은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부인한 상태다.

법무부 관계자는 "양성 확진자 방에 음성 판정자를 넣었을 리 없고 사후에 양성 확진된 경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왜곡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여러 폭로에 대해서도 "수용자들의 주장일 뿐 확인 안 된다"고 해명했다.

동부구치소는 단층 건물에 야외 운동장을 갖춘 일반 구치소와 달리 아파트형으로 지어져, 실내 생활은 기본이고 밀집도가 높다. 수용 정원은 2070명이지만 실제 수용 인원은 2419명으로 독실 숫자가 부족해 여러 명의 수용자들이 확진자와 함께 생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는 아직 동부구치소 첫 환자가 정확히 어떤 경로로 코로나에 걸렸고 집단감염을 일으켰는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사태 초기에 전수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놓고 서울시-송파구와 떠넘기기 양상을 연출하기도 했다.

법무부의 늑장 대응 논란과 맞물려 수용자들의 인권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자, 수용자들 사이에서는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소송 가능성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법무부가 집단감염의 진짜 원인 경로를 밝힐지, 구치소 내 확진 양상이 어디까지 커질지, 사태 수습 과정에서 정부가 명확한 법적 책임을 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