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중앙회 "중기 65.8% "주 52시간 근무제 대비 못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위도 "일률적 근로시간 적용은 무리"
임종화 교수 "문재인 정권, 한국 사회 테스트베드로 삼아"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중소기업계가 내년 1월 1일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될 주 52시간 근무제의 전격 시행을 앞두고 반발하자 당정이 계속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애당초 교조주의에 입각한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와 관련된 논란과 사회적 비용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25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중소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한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중소기업 인식조사'를 벌인 결과, 65.8%가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비하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근로시간 단축 준비 상태에 대해 '시행 시기 유예 및 준비 중'이 58.4%, 시행 유예 필요 기간으로는 52.7%가 1년이라고 답했다. 이어 '3년 이상'(27.4%), '2년 이상'(19.9%) 순으로 나타났다. '준비 여건이 안됨'은 7.4%로 집계됐다. 이 중 '준비 중'이라고 응답한 중소기업들은 연말까지 준비완료가 가능한지에 대해선 절반 이상이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51.7%)고도 했다.

중소기업계는 주 52시간 근무제 정착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제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및 요건 개선'(69.7%)을 요구했다. 이어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및 요건 개선'(24.2%)과 '재량 근로시간제 대상 업무 확대'(12.1%)를 요구하기도 했다.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근로자 추가 고용으로 인건비 상승'(70.4%)을 가장 많이 예상했다. 뒤이어 구인난 등 인력 부족(34.4%)과 '조업일수 단축 및 생산차질'(33.8%) 등도 우려하고 있었다. 한편 주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는 주당 평균 59시간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주 원인으론 업무특성에 따른 불규칙적 업무 발생이 56%로 1위를 차지했다.

   
▲ 그리스·로마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프로크루스테스는 길 가던 나그네를 붙잡아 자기 침대에 눕힌 후 침대보다 자리가 길면 자르고, 짧으면 억지로 늘려 사람을 죽였다. 이는 절대적 기준을 세워놓고 모든 것을 그에 천편일률적으로 맞추고자 하는 행태를 비판할 때 자주 등장한다./사진=미국 남가주대학교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기준을 세워놓고 주 52시간 근무제에 기업 여건을 맞추라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와 같은 교조주의적인 고용노동행정 탓에 일선 현장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때문에 주 52시간 근무제와 같은 규제를 도입조차 하지 않았더라면 이와 관련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란 비판 또한 나온다.

당정은 당초 근로기준법을 손질해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형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명시해두는 등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현실 여건에 맞지 않는다는 중소기업계의 반발과 아우성이 예상보다 심해 계도기간 부여·인건비 일부 지원 등을 고려하겠다며 뒷걸음질 쳤다.

실제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련 정부 부처들은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준비가 끝나지 않은 중소기업들에 대해 계도기간을 6개월 가량 주고,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을 적용할 계획이다.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은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받고 있는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된 것으로, 근로시간이 줄어 신규 직원 채용 시 1인당 80만원씩 최대 2년까지 지원하는 고용노동정책이다.

더욱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역시 주 52시간 근무제 일률 적용에 반대하는 권고안을 내기도 했다.

25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컨퍼런스'에서 장병규 4차산업위원장은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하며 "주 52시간 근무제의 일률적 적용에 대해 개별 기업과 근로자가 주도적이고 자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 한다"며 "인재 성장의 걸림돌이 되거나 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우려 또한 존재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한 "현재와 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천편일률적 고용노동정책을 사회 전체에 적용하는 건 문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이 친노동계 정책을 펴온 문재인 대통령의 직속기구에서조차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 근로시간을 천편일률적으로 맞추는 고용노동정책이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가능하다.

임종화 청운대학교 교수는 "고용노동시장에는 항상 모험적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며 "전문성과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 지급이 고용노동시장에서의 대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문재인 정권은 대한민국 전체를 거대한 테스트베드로 삼아 사회 실험을 하고 있는 꼴"이라며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임 교수는 "4차산업위도 오늘 오전 10시에 일률적 근로시간을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일부 기업에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해보니 생산력이 따라오질 못했다는 판단에 근거할 것"이라며 "근로시간을 포함한 모든 고용노동시장의 요소를 기업에 맡겨야 하는 이유가 더 명확해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고용노동시장은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답정너' 식으로 일을 벌이면 반드시 사달이 나게 돼있다"며 "관료주의(bureaucracy)에 입각한 대(對)고용노동시장 정책이 만들어질 경우 고용노동시장 자체가 정치판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예나 지금이나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 시황에 맡기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며 "주 52시간 근무제는 고용노동시장의 탄력성을 저해해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부연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다른기사보기